동강
동강
바람이 제법 매서워 잠깐이나마 목도리를 둘렀더니 이내 안경에 김이 서리기 시작했다. 목도리를 코 밑으로 내려놓자 콧물이 약간 흘러나온다. 나는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콧물을 훑어내고 본 네트 위에서 위태롭게 펄럭이고 있는 지도를 양손으로 눌러본다. 지도는 여행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커다란 지도였는데 영월에 거의 도착했을 때 우연히 들렀던 사진박물관에서 얻어왔다. 지도의 가장자리에는 숙박업소, 식당, 휴양지 등이 적혀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강은 그러니까 동강인 모양이다. 오는 길에 그렇지 않아도 동강이라는 명칭이 붙은 식당이나 상가의 간판을 몇 번 본 기억이 났다. 나는 지금 서 있는 곳이 정확히 영월 어디인지가 궁금했다. 지도만 봐서는 도대체 여기가 어디쯤이며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네비게이션이라도 하나 사 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나는 지도를 원래 접혀있던 상태로 접어보려고 노력했지만 바람 때문에 결국 실패하고 그냥 아무렇게나 대충 접은 후에 조수석에 던져놓는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아 목도리와 장갑을 지도위에 벗어 놓는다. 뺨이 화끈거렸고 손가락은 장갑을 끼웠음에도 빨갛게 얼어있었다. 어제부터 생리를 시작했기 때문에 기분도 썩 좋지는 않았다. 머리도 아파왔다. 나는 의자를 약간 뒤로 젖혀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밖에서 부는 바람소리가 차 안에까지 들려왔다. 그리고 엔진소리. 듣고 싶은 음악이 있었는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내 차는 라디오와 카세트테잎 외에는 들을 수가 없었지. 지금 라디오를 켜면 방금 전에 생각났던 듣고 싶었던 음악이 흘러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젖혀진 의자에 기대 눈만 감고 있었다. 내가 어떤 것을 소망하고 그것이 실현되기를 기대하며 상상에 빠져있을 때는 언제나 행복했다. 하지만 막상 이러한 상상이 실현되려는 순간에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실망뿐이었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좋아. 여기도 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차를 산 이후로 가장 멀리 온 곳이 지금 이곳, 영월이었다. 그 전에는 차를 출퇴근용으로만 사용했었다. 이 차를 처음 구입하러 갔을 때가 갑자기 생각난다. 회사에 입사하던 날, 나는 3년이 되면 중고로라도 차를 한 대 구입하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3년 동안 나는 상상에 빠져있었다. 가장 빈번히 했던 상상은 교통사고에 대한 상상이었다. 멋진 남자가 운전하는 외제차가 뒤에서 내차를 들이 받으면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차에서 위태롭게 걸어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멋진 남자는 내게 다가와 어디 다친데 없어요? 라고 묻고 나는 한 손으로 차의 트렁크를 짚고 서서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우선 내 상태를 물어보고 상처입은 연인들이 키스하듯이 서 있는 그의 외제차와 나의 중고차를 몇 초간 훑어본 후에 다시 내게 다가와 정말 괜찮아요? 라고 재차 묻는다. 그 때 멀리서 사이렌소리가 들린다. 경찰차가 우리 곁에서 약간은 거칠게 멈춰 선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경찰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묻고 멋진 남자는 자신이 실수로 내 차를 받았다고 대답한다. 경찰은 내게 다가와 멋진 남자보다는 다소 덜 부드러운 말투로 다친 곳이 없냐고 묻는다. 나는 괜찮다고, 그런데 눈물이 난다고 대답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미소를 짓곤 한다. 아픈 곳은 없는데 눈물이 난다니. 경찰은 일단 갓길로 차를 세우라고 지시한다. 뒤에 차들이 밀려 있잖아요. 차는 움직일 수 있어요? 멋진 남자는 그리 세게 받은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내게 운전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남자는 경찰에게 자신의 차를 갓길로 운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는 내게 조수석에 앉으세요. 제가 운전할게요. 라고 말한다. 나는 차에서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조수석으로 걸어간다. 멋진 남자는 나를 부축해 준 후에 자신은 내 차의 운전석에 앉아 차를 갓길까지 운전한다. 그는 앞으로 바싹 당겨져 있는 운전석을 뒤로 약간 밀고는 우아하게 핸들을 돌려 갓길까지 차를 몰고 간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려 경찰의 질문 몇 개에 대답을 하고 일이 원만하게 처리 될 것을 예상한 경찰이 돌아가자 그는 내게 명함을 건네준다. 그의 직업은 어떤 것이 좋을까? 예술가? 부잣집 아들? 그 남자가 우연히 나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내 상상은 더 드라마틱하게 변했겠지만 나는 그저 소박하게 그 바닥에서 알아주는 사진작가 정도로 설정을 한다. 그러자 그 전까지만 해도 어렴풋하던 그의 모습이 마침내 구체적으로 변해간다. 머리는 약간 긴 정도에 검정색 뿔테 안경을 쓰고 적당히 기른 수염으로 가려진 얼굴은 가만히 보면 동안이다. 체크무늬 셔츠를 입었고 물빠진 청바지는 약간 밑으로 내려와 컨버스 운동화를 반쯤 가리고 있다. 키는 179cm정도면 적당할 것 같다. 근육질의 몸매는 그의 예술가적인 풍모를 깎아 먹을 것 같으니 체형은 약간 마른 체형이다. 전화하세요. 어딘가 불편하면. 외모가 완성되자 이제까지의 점잖았던 말투도 약간은 건방지게 변한다. 그는 운전석에서 내리고 잠시 후에 나도 조수석에서 내린다. 그리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걸면서 자신의 차로 걸어간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운전석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멋진 남자는 먼저 출발을 한다.
내 상상은 여기서 끝이 난다. 실제로 전화를 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상상이 현실이 되었을 때를 대비해 남겨둔다. 마치 주말 오후에 해주는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한물 간 연예인이 나와 우스꽝스러운 말투로 줄거리를 다 말해준 후에 마지막에 어떻게 될까요? 직접 극장에 가서 확인하세요.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이 상상은 하루 휴가를 얻어 직장동료와 함께 차를 구입하러 가는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직장동료는 차를 구입하기위해 장안동까지 가는 동안 중고차를 구입할 때 알아야 할 점들을 쉴새 없이 설명해주고 있었다. 나는 왜 그가 내게 그런 것들을 지금 설명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중고차를 구입한다고 했을 때 그가 자신이 알아서 골라 줄 테니 함께 가자고 했던 것이다. 나는 그가 설명 하도록 내버려두고 교통사고에 대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중고차 매매상가에 도착했을 때 그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만 기다려 봐요. 아는 사람이 여기 있는데 아직도 하려나. 그는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몇 마디 나누더니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에 어떤 업자가 나타나 그와 아는 체를 했다. 애인이야? 아니야. 직장동료. 업자는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준비해 둔 차가 몇 대 있어요. 경차? 소형차? SUV? 얼마 생각하고 오셨어요? 나는 일단 준비해 둔 차를 보자고 했다. 업자는 몇 대의 차를 보여주었다. 모든 차들이 깨끗했고 마음에 드는 차는 한결 같이 내 예산에서 벗어난 가격이었다. 내가 뜸을 들이자 업자는 그럼 이건 어떠세요? 라며 내게 빨간색 승용차 한 대를 보여주었다. 좀 된 차예요. 대우차요. 킬로수는 얼마 안 되요. 중요한 건 킬로수가 아니에요. 무사고 차량이냐, 일인소유 차량이냐, 어떻게 운전했느냐. 이게 중요한 거죠. 전 차주가 여성 분이셨어요. 깨끗하죠? 여기 살짝 찌그러 진거요? 단순접촉사고 때문에 그래요. 이건 무사고에 속하는 거예요. 업자가 말하는 동안 직장동료는 운전석에 앉아 이리저리 훑어보면서 괜찮은데. 라는 말만 했다. 차를 사러 올 때는 연비며, 엔진이며 끊임없이 설명하던 그가 정작 장안동에 와서 한 말은 ‘괜찮은데’가 전부였던 것이다. 살게요. 나는 더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했다. 업자는 추가금을 내면 MP3가 되는 CD플레이어를 추가해주겠다고 했고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돌아오는 길은 그가 운전을 했다. 그는 운전을 하면서 차가 약간 쏠리는 거 같지 않아요? 엔진소리가 좀 이상한 거 같은데. 따위의 소리를 해댔다. 네비게이션 하나 있어야겠는데. 내가 알아봐 줄까요? 우리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그가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나 때문에 계획에 없던 휴가를 내주었던 그가 약간은 고마워서 운전 연수를 시켜준다 길래 그것만은 거절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그와 차 안에서 섹스를 했고 실패로 끝났다. 우리는 둘 다 차에서 섹스를 한 경험이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차가 너무 비좁았기 때문이었다. 모텔로 갈래요? 나는 거절했다. 몹시도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차를 구입하기 전에 했던 상상 중에 두 번째로 자주했던 상상은 차 안에서 섹스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막 환상이 깨진 참이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 우리는 회사에서 만나도 서로 인사만 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는 회사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는 정식으로 사표를 내고 그만 둔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그냥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이상한 것은 누구도 그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가 없어도 회사는 예전과 똑같이 돌아갔다. 나만이 그가 왜 사라졌으며 어디로 갔는지를 궁금해 했다.
차를 사고 3주가 지나서 마침내 내가 바라던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가 내 차를 뒤에서 받은 것이었다. 파란불이 빨간불로 바뀌기 전 노란불이 들어올 때 나는 횡단보도 근처에서 급정거를 했고 뒤에 오던 중형 승용차가 내 차를 받았다. 나는 핸들에 머리를 받았고 피가 약간 흐르고 있었다. 내 상상보다는 조금 더 심한 사고였고 덕분에 나는 애써서 위태롭게 걸을 필요도 없었다. 차에서 나오자 50대 아저씨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가 내게 했던 첫 마디는 ‘시발년’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차를 사기 전에 했던 모든 상상들을 잊기로 했다.
나는 눈을 떴다. 휴대전화기의 벨소리가 울렸기 때문이었다. 엄마였다. 너 어디야? 영월. 거기까지 왜 갔어! 바람 쐬러. 정신 나갔어? 여자 혼자 거긴 왜가? 그냥. 너 오늘 출근 안했어? 회사에서 전화 왔잖아. 출근 안 했어. 끊을게. 나는 전화를 끊고 배터리를 빼버렸다. 회사에서 내게 전화를 먼저 했지만 내가 받지 않자 엄마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길 건너편 칼국수 집 앞에 낡은 커피 자판기가 보였다. 나는 지갑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목도리도, 장갑도 없이 자판기까지 걸어갔다. 매서운 바람 때문에 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인 채 걸어야 했다. ‘사용가능’. 희미하게 자판기에 불이 들어와 있었고 나는 백 원짜리 동전 세 개를 재빠르게 집어넣고 밀크커피 버튼을 눌렀다. 컵이 먼저 나오고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커피가 다 나왔다는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나는 컵을 빼서 차 안으로 돌아왔다. 바람 때문에 내 얼굴은 여러 대의 뺨을 맞은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너무 달고 너무 진했다. 뱉어버리고 싶었지만 억지로 삼켰다. 그러자 눈물이 흘렀다. 정말로 뺨을 맞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눈물 한 방울이 커피가 들어있는 종이컵에 떨어졌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한 모금을 더 마셨다. 혹시나 누가 차 안을 들여다 볼까봐 주변을 둘러본 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울기 시작했다. 종이컵을 컵홀더에 내려놓고 양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고개를 파묻고 소리를 내서 울었다. 직장동료와 차 안에서 했던 실패한 섹스 때문에 서러웠고, 50대 아저씨가 내 차를 뒤에서 받았을 때 시발년이라고 욕했던 기억도 서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마치 강간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더욱 그랬다.
나는 울음을 멈추고 아까 영월에 올 때 들렀던 주유소에서 줬던 휴대용 화장지를 꺼내 눈물과 콧물을 닦았다. 그리고 커피를 다시 한 잔 마셨다. 속이 쓰려왔다. 아직도 고여 있는 눈물 너머로 오후 4시 28분이라는 시간이 보였다. 이제 곧 어두워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겁이 났다. 그냥 이대로 돌아갈까? 엄마는 분명 내가 오늘 결근한 이유를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다. 내일 들어가도 캐묻기는 마찬가지겠지만 오늘은 엄마의 잔소리를 들을 기분이 아니었다. 문득 조수석에 던져놓았던 지도가 생각났다. 지도에 숙박업소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곳에서 얼핏 무슨 펜션 이름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장갑과 목도리 밑에서 지도를 꺼내 펼쳐보았다. 펜션이름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전화를 걸어보려 했지만 조금 전에 휴대폰 배터리를 빼 놓은 것이 기억났다. 펜션에 얼른 전화를 걸고 다시 배터리를 빼 놓을까? 펜션에 전화를 하는 동안 회사나 엄마한테 전화가 오면 어쩌지? 주변에 공중전화는 보이지 않았다. 펜션의 주소를 찾아보기 위해 다시 지도를 들여다보자 갑자기 모텔 이름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차라리 모텔에서 잘까? 여자 혼자 모텔에 들어 갈 것을 생각하자 덜컥 겁부터 났다. 나는 지도를 접지도 않고 다시 조수석에 던져 놓았다. 커피는 벌써 미지근해져 있었다. 나는 달고 맛없는 커피를 단숨에 비워버리고 빈 종이컵을 컵홀더에 다시 올려놓는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그래서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생각은 식사를 하면서 하자. 커피자판기가 있던 칼국수 집이 보였다. 나는 시동을 끄고 목도리를 두른 채 차에서 나와 아까 커피를 뽑으러 갈 때보다 조금 더 빨리 뛰어 칼국수 집으로 들어갔다.
칼국수 집은 밖에서 본 것 보다 더 낡았고 더 작았다. 테이블은 모두 합쳐 세 개 밖에 없었다. 그나마 하나 있는 테이블에는 낡은 TV가 얹어져 있었다. TV에서 연속극 재방송을 보고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시선은 TV에 고정시킨 채 인사를 한다. 내가 테이블에 앉자 비로소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뭐 드릴까?”
“칼국수 주세요.”
“아줌마! 여기 칼국수 하나!”
아줌마가 또 다른 아줌마에게 소리친다. 또 다른 아줌마는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고 칼국수 하나? 라고 되묻는다. TV를 보던 아줌마는 고개를 살짝 끄덕거리고는 다시 TV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잠시 후에 연속극이 끝나고 아줌마는 한숨을 내쉬며 주방 쪽으로 걸어가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강원도 억양으로 묻는다.
“여기 처녀가 아닌가보네?”
“서울에서 왔어요.”
“서울……. 혼자?”
“네.”
“웬일이래. 아가씨혼자서. 누구 만나러 왔어?”
“그냥 바람 쐬러 왔어요.”
“그래. 구경 좀 했어?”
“네.”
주방에 있던 아줌마가 칼국수를 내놓는다. TV를 보던 아줌마는 작은 접시에 김치를 담아서 칼국수와 함께 내 앞에 가져다 놓는다. 그러면서도 틈날 때 마다 나를 쳐다본다.
“김치 부족하면 말해요.”
“네. 근데 아줌마. 이 근처에 혹시 펜션있어요?”
“펜션?”
“네.”
“글쎄……. 그런게 여기 있던가?”
“뭐가?”
주방에 있던 아줌마가 뭔가를 먹으면서 거든다. TV를 보던 아줌마를 한 번 쳐다보고 다음에 나를 쳐다본다.
“펜션 찾는다는데 이 동네에 있어?”
“펜션이 뭔데?”
“왜 있잖아. 집 예쁘게 지어놓고. 밖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난 모르겠는데?”
두 아줌마가 그런 곳은 잘 모르겠다는 듯 동시에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냥 한 번 웃어보이고는 칼국수를 먹기 시작한다. 칼국수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두 아줌마는 펜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게 요즘에 유행이라는 구만? 그래? 철되면 없어서 못간데. 그래? 내가 TV를 보던 아줌마한테 김치 좀 더 달라고 부탁하자 TV를 보던 아줌마는 내 앞에 있던 조그만 원형 접시를 가져가 다시 김치를 채워 내 앞에 갖다 놓는다.
“여기서 자고 가게?”
“그래야 할 것 같아요.”
“혼자?”
“혼자요.”
아줌마는 이제 내 맞은편에 두 팔을 괴고 앉아 내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온 젊은 여자가 혼자 외딴곳에서 자고 간다고 하니 궁금한 모양이었다.
“저기 가면 모텔은 몇 개 있는데.”
“혼자 들어가기 뭐해서요.”
“그렇지. 혼자 들어가기 좀 뭐하지. 그럼 어떻게 하려구?”
“생각중이에요.”
“그래……. 잘 생각해봐. 웬만하면 집에 들어가고. 무슨 사정이 있어 나왔는가봐.”
“그런 거 아니에요.”
“여까지는 어떻게 왔어?”
“운전해서요.”
“그럼 운전해서 다시 집으로 가면 되겠네.”
“생각해 볼게요.”
칼국수의 양이 의외로 많아 나는 결국 칼국수를 남기고 말았다. 커피 한 잔 하고 가. TV를 보던 아줌마는 이렇게 말하며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식당 밖으로 나가 아까 그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아서 한 잔은 내 앞에 놓고 다른 한 잔은 손에 든 채 다시 내 맞은편에 앉았다. 아무래도 계속 내가 궁금한 모양이다.
“뭐하는 아가씨야?”
“회사다녀요.”
“오늘 평일인데. 회사 안 갔어?”
“휴가 냈어요.”
“휴가…….”
주방에 있던 아줌마도 우리의 대화에 관심이 있는지 주방에 기대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TV를 보던 아줌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내게 마셔봐. 라고 말한다. 나는 마지못해 한 모금을 마신다. 커피 맛이 아까보다는 조금 덜 지독하게 느껴졌다.
“조심해서 다녀야 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여기 파출소는 어디 있는지 알아?”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 길로 쭉 가면 갈래길 나와. 거기서 왼쪽…….”
“오른쪽이지. 벌써 노망났네.”
주방에 있던 아줌마가 TV를 보던 아줌마에게 핀잔을 준다. 오른쪽이야? TV를 보던 아줌마가 못 믿겠다는 듯 확인한다.
“오른쪽이지. 왼쪽은 박씨 사는 곳이고.”
“그려. 왼쪽은 박씨 사는 곳이지. 맞어. 내가 헛갈렸어. 오른쪽으로 쭉 가면 사거리 나오고 거기 어디 파출소 있어. 사람들한테 물어봐.”
“네.”
“커피 식겠네. 어여 마셔.”
“커피 안 좋아하나 보네.”
주방에 있던 아줌마가 던지듯이 말하며 다시 주방으로 돌아간다. TV를 보던 아줌마는 정말로 커피 안 좋아하냐고 묻는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고는 커피를 반 쯤 비운다. 마치 소주잔을 비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일어나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나는 커피가 반쯤 남은 종이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안 마시려면 컵 이리 줘.”
“아니에요. 차에서 마실게요.”
나는 두 아줌마들에게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는 식당에서 나왔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보다 더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 때 등 뒤에서 TV를 보던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도리 가져가야지.”
나는 아줌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차로 돌아왔다. TV를 보던 아줌마는 내가 차에 타는 모습을 잠깐 동안 지켜본 후에 바람 때문에 몸서리를 치며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자. 이제 어떻게 하지? 날씨는 벌써 어두워져 있었고 시간은 거의 6시가 다 되어 있었다. 거리에는 인적이 거의 없었다. 문을 연 가게도 드물었다. 사실, 이 근처는 낮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으며 가게도 별로 없었다. 왜 하필이면 이런 곳으로 왔을까? 네비게이션이 있었다면 더 좋은 곳으로 갔을 수도 있을 텐데. 처음 차를 살 때 직장동료가 네비게이션을 사라고 권했을 때 살걸 그랬다는 후회가 갑자기 밀려왔다. 이제 더 이상 내 주변에는 내게 네비게이션을 사라고 권해줄 사람도, 알아봐 주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과연 혼자 차를 사러 갔다면 이 차를 살 수 있었을까? 아마 차를 사지 않고 그냥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그가 나와 함께 차를 사러 가주었기에 나는 이 차를 살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그에 대한 미련이 밀려왔다. 그러자 차 안에서의 실패했던 섹스조차도 희미하게나마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이 되려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젓고, 시동을 건다. 모텔로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운이 좋다면 프런트에 있는 사람이 여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의외로 깨끗한 모텔을 찾아 편안하게 밤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케이블 TV에서 내가 평소 보고 싶었던 영화를 해줄지도 모른다. 나는 손에 들려있던 이제는 식어버린 반쯤 남은 커피를 마저 마셔버리고는 아까 마셨던 종이컵 위에 쌓아놓고 천천히 동강을 등지고 모텔을 찾아 핸들을 돌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찾은 모텔은 칼국수 집을 떠나 온지 한 시간 만에 찾았다. 그 모텔은 겉모습이 너무 초라해보였다. 모텔이라기보다는 여관에 가까웠다. ‘대실 15000원’이라고 적혀진 간판이 전부였다. MOTE까지는 불이 들어왔지만 L자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두 번째로 찾은 모텔은 처음의 모텔보다는 컸지만 허름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모텔 입구에서 불량해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내 생각에 그 남자는 모텔에서 일하는 남자처럼 보였다. 짧은 머리에 위로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고 정장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는 추위에 덜덜 떨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그가 내 차를 쳐다볼 때 나는 재빨리 그곳을 떴다. 세 번째 모텔은 그중에 가장 괜찮아 보이는 겉모습을 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대형 평면TV, 성인방송, 인터넷 가능’ 이라고 적혀있는 플랜카드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시간은 벌써 아홉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차에 잠시 앉아 그 모텔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망설여졌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달리 먹고 출발하면 새벽 한 시쯤에는 집에 도착할 것 같았다. 엄마는 주무시고 계실 것이고 설령 나 때문에 깨더라도 오늘은 내게 아무 것도 묻지 않겠지. 그러나 일단은 몸이 피곤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차를 몰아 모텔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 몇 대의 차들이 주차해 있었다. 개중에는 트럭도 있었다. 도대체 왜 모텔에 트럭이 있는 것일까? 나는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하고 시동을 껐다. 그리고 가방을 챙겨 나가려 할 때 어떤 남자가 담배를 피우면서 모텔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삼십대 중반쯤의 나이로 보였고 빨간색 등산용 잠바를 입고 있었다. 그는 모텔 앞에 서서 잠시 동안 피우던 담배를 마저 피우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내내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가 보기에는 초조해 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는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구둣발로 몇 번 비빈 후에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에 그는 다시 한 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차 안에서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 들어가면 저 남자와 동시에 프런트에 서 있을 것이고 그런 상황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아니. 나는 이제 막 그 상황을 상상하기 시작한 참이었다. 전혀 상관없는 두 남녀가 모텔 프런트 앞에 서 있다면 프런트에 있는 모텔 주인은 아마 혼란을 느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우리를 일행으로 생각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금전적으로야 모텔 주인에게 유리하지만 성(性)적인 입장으로 봤을 때는 무척 비효율적이라는 것에 안타까워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상상의 순간은 지나갔다. 남자는 이미 방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고 이제는 내가 들어갈 것이다. 남자와 내가 모텔 프런트에서 만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려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프런트에는 할머니 한 분이 앉아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할머니가…….
“301호로 가봐.”
할머니가 노트를 덮으며 내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다짜고짜 말한다.
“네?”
“301호. 손님 방금 전에 들어가셨으니까. 얼른 들어 가봐. 너 처음이야?”
“저기요. 저. 뭘 잘못 아신 거 같은데.”
“빨리 들어 가봐 이년아. 잘못 알긴 뭘 잘못 알아. 이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옷 꼬라지 봐. 아무리 추워도 그렇지. 이렇게 옷을 덕지덕지 껴입고 오는 년이 어디 있어? 화장도 안하고. 렌즈도 안 끼고. 너 누가 보내서 왔어?”
“저…….”
“장 사장이 애 하나 새로 데리고 왔다더니 얘구먼. 빨리 안 들어가면 장 사장한테 전화한다?”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프런트 밖으로 나와 내 앞에서 휴대전화기를 흔들어댔다. 내 이성은 빨리 여기서 벗어나 차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정작 내 앞에 할머니가 서 있자 몸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할머니는 그 자리에 계속 서서 내가 엘리베이터를 탄 후에 문이 닫힐 때 까지 나를 지켜보고 서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빠르고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무섭기도 하고 한 순간에 매춘부로 전락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비참함까지 느껴졌다.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해있었다. 저 할머니가 ‘장 사장’이라는 사람한테 전화를 하면 그는 몇 초 안에 여기로 달려올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자신이 보낸 매춘부이든 아니든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위협하겠지. 어쩌면 그에게는 더 잘 된 일일수도 있을 것이다. 여자 하나가 공짜로 굴러들어온 셈이 될 테니. 영영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슬퍼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는 3층에서 멈췄고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성인용품을 파는 자판기 옆에 서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서 있으면 ‘진짜 매춘부’가 이곳으로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나는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성인용품을 파는 자판기 옆에 쭈그리고 앉아 ‘진짜 매춘부’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지금 병신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할머니를 무시하고 차로 달려가면 될 것을. 나는 쭈그리고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베이터로 다가갔다. 엘리베이터는 어느새 1층으로 내려가 있었다.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려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다. 원래 오기로 했던 여자가 올라오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할머니가 내가 301호로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올라오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손님이? 아니면 장 사장이?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두 손을 모은 채 발을 구르고 그 자리에 서서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것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3이라는 숫자에 주황색으로 불이 들어오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얼핏 보기에도 싸구려 처럼 보이는 밍크코트를 입고 짧은 치마에 검정색 스타킹을 신은 여자가 껌을 씹으며 서서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화장을 짙게 해서 최대한 주름을 가리려 한 듯 했지만 나를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릴 때 눈가의 주름이 희미하게 접혀지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 하자 여자는 재빨리 버튼을 눌러 다시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내 앞에 서서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아가씬가 보네.”
“네?”
“아가씨가 내 손님 뺏으러 왔다면서?”
“아니에요. 정말로.”
“아니긴 뭐가 아냐. 시발년이.”
여자는 마치 뺨을 때릴 듯 손을 들었다가 내가 고개를 돌리자 들었던 손을 내렸다. 나는 곁눈질로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나를 다시 한 번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녀의 눈에 의심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정말 아냐?”
여자가 약간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넌 뭔데? 꼬라지 보니 정말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저는 그냥 여기서 하룻밤 묵으려고 왔어요.”
“혼자?”
“네.”
“집 나왔니?”
“아뇨. 그 저 바람이나 쐴 겸 영월에 왔다가…….”
“바람이나 쐬러 와? 웃기네. 너도.”
“죄송해요. 얼른 나갈게요.”
“야. 잠깐 기다려봐.”
여자는 손바닥만한 핸드백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내 어디다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장 사장님. 나예요. 초희. 응. 도착했어. 이 손님 몇 시까지 들어가야 해? 내가 너무 빨리 왔네. 나 십분 있다가 들어갈게. 앞에서 아는 사람 잠깐 만났거든. 알아. 들어 갈 거야. 있다가 들릴게. 끊어. 여자는 손바닥만한 핸드백에 다시 휴대전화기를 집어넣고 대신에 담배를 꺼냈다. 그녀는 담배를 두 개 꺼내서 하나는 입에 물고 다른 하나는 내게 건네줬다.
“아가씨 담배 피워?”
나는 안 피운다고 대답했다. 하나 피워봐. 그녀는 자신이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그 담배를 내게 건네주었다. 필터에 붉은색 립스틱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나는 가지고 있던 담배를 여자에게 건네주고 그녀가 불을 붙여 준 담배를 받아들어 한 모금 빨아들였다. 목이 막히는 것 같더니 갑자기 기침이 튀어나왔다. 얼굴이 벌개 질 때까지 나는 여섯 번 정도 기침을 했다.
“정말 아닌가 보네. 이리 줘요.”
나는 아직도 잔기침을 하며 그녀에게 담배를 건네주었다. 여자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담뱃갑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나는 그 모습이 왠지 멋있어 보였다.
“아가씨 내가 미안해. 장 사장 그 개새끼가 어디서 젊은 년을 하나 데려왔지 뭐야. 나는 아가씨가 그 년인 줄 알았어.”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그녀는 하이힐 굽으로 바닥에 깔려있는 싸구려 양탄자를 긁어댔다.
“웃기는 거야. 내가 젊었을 땐 돈 좀 만지게 해주겠다고 꼬셔서 이 짓하게 만들더니 단물 다 빨아먹고 이제 와서 버리려고 그러는 거지.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야. 근데 장 사장이 스물네 살짜리를 데리고 왔더라구. 그런데 아가씨는 뭐해? 학생?”
“서울에서 회사 다녀요.”
나는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았으므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게다가 조금 전에 피웠던 담배 때문에 목이 아파왔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왜 왔어? 오늘 평일인데.”
“휴가 받았어요.”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이 짓만 8년 했어. 사람 딱 보면 알지. 회사에서 잘렸어? 이런 거 물어보면 실례인가?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나?”
나는 잠시 망설였다. 내가 왜 내게 욕을 하고 때리려고 까지 한 창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지? 그냥 적당히 얼버무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여자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이 좁은 세상에서 그녀는 그녀가 가진 유일한 생존방식을 위협받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면 웃을 거예요.”
“괜찮아. 말해봐. 설마 내 인생보다 더 웃기겠어?”
“그냥.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봤어요.”
“그게 무슨 뜻일까?”
“그냥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버리는 상상 말이에요. 내가 속해있는 집단에서 저라는 존재는 어느 순간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버리는 거예요. 같은 회사의 동료 한 명이 어느 날 사라진 적이 있었거든요. 말도 없이. 사표도 내지 않구요. 하지만 아무도 그가 사라진 것을 신경 쓰지 않은 거예요. 물어봐도 모른다고만 말 할 뿐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회사에서 사라져 버린 그 사람과 같은 존재인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회사에서는 아가씨를 찾았어?”
“전화가 몇 번 왔었어요. 받지는 않았구요.”
“왜?”
“그걸 모르겠네요. 오히려 회사에서 나를 찾았다는 사실이 더 기분이 이상했어요. 마치……사라졌던 그 직장동료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 같았어요. 내게만 존재했던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여자는 손바닥만한 핸드백에서 휴대용 화장지를 꺼내 몇 장을 뽑더니 화장지에 침을 뱉고 거기에 담배를 비벼 껐다. 그녀는 화장지를 손으로 뭉쳐서 성인용품을 파는 자판기 뒤쪽에 던졌다. 뭉쳐진 휴지가 떨어진 자리에 비슷한 것들이 몇 개 더 보였다.
“아가씨가 전화해서 직접 물어볼 생각은 안했어?”
“안했어요. 일이……좀 있었거든요.”
차 안에서의 실패로 끝난 섹스. 그날 밤. 그가 모텔로 가자고 했을 때 갔어야 했을까? 어쩌면 그가 사라진 원인은 모두 나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에게 차를 산다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아니면 그가 함께 차를 사러 가자고 했을 때 거절했다면. 그는 어쩌면 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가씨한테 소중한 사람이야?”
“어쩌면요.”
“그러면 아가씨가 전화해봐. 그 사람이 사라졌는데 아무도 찾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 돼. 아가씨가 찾고 있었잖아?”
여자는 갑자기 휴대전화기를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그리고는 시간 다 됐네. 라고 말하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자 그녀는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으로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며 그녀가 말했다.
“내가 노인네한테 말해줄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프런트에 있던 할머니는 벽에 기대 졸고 있었다. 여자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나를 모텔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어떻게 할 거야? 여기서 자기는 틀린 거 같은데? 열시가 다 됐네.”
“차가 있어요. 서울로 돌아갈래요.”
“차가 있었어? 잘됐네. 지금 가면 그래도 새벽에는 들어가겠지?”
“길만 잘 찾는다면요.”
“좋아. 차가 있다면 안심이네. 아가씨. 우리가 시작은 안 좋았지만 그래도 나중은 괜찮았어.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사람한테 전화해보는 거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여자는 내게 손을 한 번 흔들고 모텔로 들어갔다. 나는 내 차로 가서 시동을 걸고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쩌면 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단지, 그 해답은 내 상상 속에 존재해 있었고 나는 그 상상이 실현되지 않을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나는 차를 운전하는 동안 다시 상상 속에 빠져 버렸다. 차를 사기 전에 했던 교통사고에 대한 상상이었다. 이제는 그 상상이 현실이 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상상은 상상일 뿐이었다.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나는 겨우 서울로 올 수 있었다. 졸음이 밀려왔다. 그래서 일부러 창문을 약간 열어 놓았다. 차가운 기운이 차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집 근처까지 간신히 왔을 때 나는 신호에 걸려 차를 세웠다. 그때였다. 등 뒤로 가벼운 충격이 전해진 것이었다. 내 몸이 앞으로 젖혀졌지만 다행히 핸들에 머리를 부딪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머리가 멍하고 정신이 없었다. 룸미러로 뒤를 보자 차 한 대가 내 뒤쪽 범퍼를 들이 받았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나를 받은 차에서도 남자 한 명이 내렸다. 그리고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갑자기 내가 했던 상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상상은 드라마틱하게 변하여 현실이 되고 있었다. 나를 들이받은 남자가 내가 아는 사람일뿐만 아니라 그는 나와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던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는 내게 다가와 괜찮으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하루 종일 당신을 기다렸어요. 라고 말하며 그는 내게 물었다.
“도대체 이렇게 늦게까지 어디 있었던 거예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눈물도 날 것 같았다. 대답대신에 나도 그에게 물었다.
“그러는 당신은 그동안 어디 있었던 거죠?”
Fin.
'TEXT - Julian's Shot Cut'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동강 (0) | 2009/11/18 |
|---|---|
| Lonely Avenue (0) | 2009/11/06 |
| 생각의 장난 (0) | 2009/09/30 |
| 안개 낀 밤의 데이트 (1) | 2009/09/30 |
| 시간의 종말 (0) | 2009/09/30 |
| P.M 9:00, 8번 승강장 (0) | 2009/09/30 |
